[인터뷰②] '충무로 미다스' 장원석 대표 "대박 영화, 제1의 조건은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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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05.23. 오전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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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 김지혜 기자]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을 항해에 비교하자면 감독은 선장이고 프로듀서는 나침반이다. 감독은 키를 움직이고, 프로듀서는 방향을 제시한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가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행여 잘못된 길로 빠지진 않는지 시시각각 점검한다. 영화에 가장 깊게 관여한 사람이면서도 끝까지 제3자의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존재다. 좋은 영화엔 좋은 감독과 배우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좋은 프로듀서가 있다.

장원석. 27살에 영화 '왕의 남자' 제작실장으로 활약하며 충무로에 이름 석 자를 알렸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은 아니다. 이십 대 중반부터 시쳇말로 영화판을 뒹굴었다.

10대 시절 일찌감치 '영화감독'으로 꿈을 정한 그는 중앙대 영화학과 입학이라는 목표만 놓고 내달렸고, 실수 없이 첫 단추를 끼웠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장밋빛이 아니었다. 학문의 요람 대신 치열한 영화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졸업장을 따지 않은 건 "학교생활이 무료해서 기도 하지만, 영화일에 지칠 때 다른 대안을 찾게 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장원석은 2010년대 이후만 놓고 봤을 때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기획했고 제작한 영화인 중 한 명이다. '의형제'(2010), ‘최종병기 활’(2011), ‘퍼펙트게임’(2011), ‘점쟁이들’(2012),‘내가 살인범이다’(2012), ‘집으로 가는 길’(2013), ‘끝까지 간다’(2014) 등을 제작했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공동기획했으며 '비스티 보이즈’(2008), ‘허삼관’(2014)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Q. 첫 영화가 '박봉곤 가출 사건'(1996)이다.

A. 대학에 적응을 못 하고 있었는데 선배인 안동규 대표(현 두타연 대표)님이 '박봉곤 가출사건' 제작부 일을 시켜주셨다. 당시 제작부엔 안 대표님과 나를 포함해 달랑 4명이었는데 핸드폰도 없이 발로 뛰면서 일했다. 영화를 마친 후 너무 힘들어서 '나 다시는 제작부 안 해!'하고 군대에 갔다.

Q. 그래서 제대 후엔 연출부를 했다고?


A. 군대를 다녀오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감독에 대한 꿈이 있었으니 연출부로 들어갔다. 김용화 감독이 준비하던 '오르페우스'의 연출부, 장항준 감독의 영화 연출부 일을 했다. 근데 다 엎어졌다. 경제적으로도 쪼들리고 힘들어서 영화를 그만두려고 했다.

Q. 충무로 시절에 연출부, 제작부를 거쳤으면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A. 대구에서 올라와 친구의 옥탑방에 신세질 정도로 어려웠다. 내가 영화 하면서 처음으로 월급 받은 작품이 '빙우'(2003)다. 그전까진 한 푼도 못받았다. '빙우'때 월급 100만 원, '왕의 남자'때 150만 원을 받았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게 생활의 발견이구나' 싶더라. 영화도 보고 술도 한잔 하고 문화생활이란 걸 하기 시작한 거지.

Q. 영화감독을 꿈꾸다 제작자로 방향을 튼 결정적 계기는?

A. '오버 더 레인보우'(2002)연출부 일을 끝내고 감독 준비를 했는데 잘 안됐다. 그때 진로를 확실히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다들 "넌 프로듀서 스타일"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제작부장으로 들어간 작품이 '빙우'다. 그 다음 작품이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였다.

Q. 프로듀서 스타일이란 건 뭔가? 감독 스타일과는 어떻게 다른 건가?

A.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사교성이 좋고…. 감독은 하나만 파고드는 오타쿠 기질이 있어야 하는데 난 그렇진 않다. 또 연출 준비할 때 영화가 자꾸 엎어지다 보니 '난 감독할 인연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참고로 대학 때 전공(영화연출)은 다 A학점 받았다. 하하.

Q. 31살에 '다세포 클럽'의 대표가 됐다. (장원석 대표는 현재 두 영화 제작사 '다세포 클럽'과 '비에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프리랜서로 프로듀서 활동을 하고 있다)

A. 어느 날 안동규 대표님이 "너 '다세포클럽' 대표 해라"라고 하시더라.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게 해주셨으니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초반에 영화가 계속 엎어졌다. 그때 윤종빈 감독의 '비스티 보이즈', '평행이론', '의형제' 등의 프로듀서를 프리랜서로 했었다.


Q. 윤종빈 감독은 대학 후배기도 한데…. 이때 처음 만난 건가?

A. 중대 후배다 보니 친분은 있었다. 윤종빈 감독이 상업 영화 데뷔를 앞두고 경험 차원에서 '왕의 남자' 연출부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졸업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2005)가 칸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다. 당시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이 각 제작사에 전화를 걸어 "윤종빈은 꼭 잡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사 제안이 봇물 터지는 상황이었다.

Q. 그런 윤종빈을 잡은 원동력은...학연?

A. 아니다. 오히려 난 "네가 나중에 힘들어지면 같이 하자. 그때 도와줄게"라고 했다. 사심없는 내 모습에 감동했던 것 같다. '비스티 보이즈'(2008)를 같이 하자고 하더라.

Q. 생각해보면 '비스티 보이즈'는 잘 만든 실패작이었다. 당시로써는 쉽지 않은 소재라 그런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들었다.

A. 정말 힘들었다. 우선 펀딩이 되질 않았다. 영진위 지원금 4억으로 시작한 영환데 센 소재와 배우의 인지도 때문에 투자가 원활치 않았다. 그땐 하정우가 지금의 하정우가 아니었다. '추격자'를 하기 전이었으니. 진짜 발로 뛰다시피 했다. 그러다 'DCG플러스'가 나서면서 메이드 된 거다. '비스티 보이즈'는 16억 원으로 제작해 73만 명 들었다. 겨우 손익분기점은 맞췄다. 그때부터 한해도 안 쉬고 영화 제작을 했다.

Q. 프로듀서 혹은 제작자로서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자신만의 비결은?

A. 기자나 평론가들은 영화를 너무 하이(High)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흥행이 작품성이나 완성도와 비례하는 건 아니다. 난 철저히 대중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본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유치해 보이는 것도 관객이 보면 웃기고,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 해도 관객의 눈에는 무리 없이 넘어가는 것들이 많다. 나도 영화 연출을 전공한 사람이다. 작품에 대해 평가하자면 어떤 영화도 꼼꼼하게 분석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대중예술이다. 특히 프로듀서는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의 시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Q. 대박이라 할 수 있는 영화는 '활'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지만 따지고 보면 제작, 프로듀싱한 작품이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대박 영화 제1의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나?


A. 시나리오다. 

Q. 영화는 감독의 예술 아닌가. 시나리오가 좋지 않아도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지 않나?  

A. 내 경우엔 없었다. 시나리오는 좋은데 영화를 망친 경우는 많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나쁜데 잘된 영화는 없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Q. 좋은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은 어떻게 쌓이는 건지?

A.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 대중의 눈높이와 맞추는 트레이닝을 계속 해야한다. 영화적인 완성도, 질적 완성도에 쏠리지 않고 이야기가 재밌는 지를 먼저 봐야 한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좋은지 나쁜지,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의 판단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도 갈리듯.

모든 영화는 감독, 배우, 투자, 배급사 관계자들이 재밌다고 해서 만들어진 거다. 문제는 다 같이 잘못 볼 수도 있다는 거지. 친구들과의 수다도 이야기가 재밌으며 두 시간 동안 듣고만 있어도 즐거운데 지만 즐거운 얘기를 하면 10분만 들어도 지루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꼼꼼히 한다. 난 주변의 의견을 잘 듣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오면 '너희는 영화를 몰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부분이 재미없다는 거지?'하고 반성하고 점검하려고 한다.

Q. 그렇다면 언론이나 평단의 평가에도 그렇게 쿨할 수 있나?

A. 물론이다. 난 비판일수록 날카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영화들의 리뷰나 평가 또한 꼼꼼하게 챙겨본다. 다음 작품을 만들때 참고하기도 한다. 단, 이유없이 까는 건 이해가 잘 안 된다.

Q. 프로듀서로서 대표작이나 특별히 애착 가는 작품을 꼽자면?


A. 모든 작품이 다 특별하다. 내가 제작한 영화 중 가장 성공한 영화는 '최종병기 활'이다. 김한민 감독이 시나리오와 기획을 했고 연출도 잘했다. 또 제작사 'DCG플러스'의 힘도 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공동제작이라 하지만 사실상 제작사 'AD406'에 '다세포 클럽'이 숟가락 하나만 얻은 거다. '범죄와의 전쟁' 경우 윤종빈 감독이랑 시나리오 개발과 기획을 같이 했고 내가 프로듀서까지 하려고 했는데 '활'을 촬영할 때라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프로듀서는 100%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다행히 한재덕 대표님이 프로듀싱을 잘해서 성공했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정병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상태로 내가 픽업만 한 거고, 영화의 아이템을 발굴하고 기획해서 감독 세팅까지 다 해서 들어간 경우도 있는데 '평행이론', '577 프로젝트'다. 근데 흥행은 잘 안 됐다.

Q. '끝까지 간다'는 지난해 한국 영화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도 꽤 오랫동안 표류했다. 

A. 다른 제작사에 있던 작품인데 메이드가 안됐다. 그때 '활'을 함께 했던 정지훈 PD가 이 영화 이야기를 하더라.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재미가 없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함께 제작 했던 'AD406'의 차지헌 대표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는데 "5고를 읽어보라"고 하더라. 같은 내용인데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 읽은 13고보다 5고가 훨씬 재밌어 그것을 바탕으로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Q. 영화의 흥행도 흥행이지만 김성훈 감독이라는 사람을 얻게 된 게 더 큰 수확 아닐까? 실패한 데뷔작('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처음엔 반신반의 했을텐데? 

A.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긴 하지만, 협업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감독이 제 역량을 발휘하고 제작자가 프로듀싱을 잘하면 시나리오와 비슷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김성훈 감독은 시나리오 각색 작업과 비주얼 피칭하는 걸 보면서 연출도 잘 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사람이 인간성이 너무 좋다. 무엇보다 그렇게 확실한 계획과 밑그림을 그려놓고 작업하는 감독은 잘 없다. 

Q. 김한민 감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건가?

A. 윤종빈 감독이 연결고리가 됐다. '범죄와의 전쟁'을 준비할 땐 데 그 영화 역시 투자가 수월하지 않았다. 윤 감독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 내가 다른 영화를 제작하느라 감독을 챙기질 못했다. 그때 윤종빈 감독이 김한민 감독과 요가, 자전거 등 취미생활을 공유하면서 친해졌다.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더라. 김한민 감독이 얼마나 고맙던지. 이후에 윤종빈 감독이 자리를 마련했고 친해졌다. 어느 날 김한민 감독이 '최종병기 활' 초고를 보여주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Q. '최종병기 활'의 성공 이후 두 사람이 틀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최근 김한민 감독과 다시 영화 제작을 한다는 게 화제가 됐다.

A. 그 소문 와전된 거다. 우리 사이좋다.


Q. 돈 때문에 등졌다는 소문 말하는 건가? 사실 확인을 해달라.

A. '최종병기 활' 이후 수익금 배분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소송까지 갈려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와전된 것이다. 계약서 상의 해석 차이로 오해가 있었는데 원만하게 해결했다. 빅스톤 픽처스 창립작 '명량'을 함께 하지 않으며 소문에 힘이 실린 것 같은데 그때도 연락하고 현장에 놀러까지 갔다. 김한민 감독이 '명량'때 다음 작품을 함께 하자고 해서 하게 된 거다.

Q. 두 사람의 시너지가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사냥', '봉오동 전투'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A. 잘 맞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특히 프로듀서의 의견에 그 어떤 감독보다 열려있는 사람이다. '사냥'은 캐스팅을 진행중이고, '봉오동 전투'는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참고로 두 작품 모두 김한민 감독이 연출이 아닌 제작자로 나서는 영화다.  

Q. '잘 된 감독은 안 잡고, 안 된 감독은 언제라도 함께한다'는 소신이 있다고 들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데 그게 가능한가? 

A. 나보다 뛰어난 제작자가 많은 데 굳이 나와 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다만 힘들 때 손 내미는 사람은 여건이 되면 함께 하려고 한다. 잘됐다고 늘 잘되는 것도 아니고 안됐다고 늘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는 아니다. 

Q. 영화가 뜻대로 안 나오고, 흥행에 실패할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나? 

A. 영화란 귀를 열어놓고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모든 걸 처음부터 그려놓고 꼭 그대로 간다고 좋은게 아니다. 그러면 굳이 협업을 할 필요가 없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 힘을 합쳐 최선을 끌어내야 한다. 이 생각을 항상 되뇌이려 한다. 

Q.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제작자 중 한 명이다. 내년, 내후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다고 들었다.

A. 차기작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조감독 출신인 송민규 감독의 데뷔작 '목숨 건 연애'다. 한중 합작 영화로 알려졌는데 이야기 설정상 중국 배우가 필요해 진백림을 캐스팅했을 뿐 한국 영화다. '범죄도시-가리봉동 잔혹사'라는 작품도 올 연말 들어갈 것 같다. 신예 강윤성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의 차기작 '터널'도 제작한다. 또 김한민 감독의 제작사 빅스톤 픽처스에서 만드는 '사냥', '봉오동 전투'도 하기로 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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